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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사진세미나 <한국의 가족>과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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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owpa 작성일06-06-27 18:09 조회2,3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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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사진세미나 <한국의 가족>과 다큐멘터리

일시:2003년 12월19일(금:오후 3시/서울여성플라자)
주제: 한국사진사 - <한국의 가족>과 다큐멘터리
강사: 박주석(광주대학교 사진학과 교수, 한국사진사연구소 책임연구원)



1.
60년대 말부터 강화되기 시작한 개발독재의 흐름은 산업화의 명분 속에 70년대 10월 유신으로 이어지고, 70년대 한국정부는 획일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모습으로 사회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70년대 시작된 대중과 권력의 이념적 대립은 무분별한 산업화 정책과 개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통제를 강화하는 과정 속에서 나타났으며,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소외된 사회 구성원들의 아픔과 불만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진가들에게 비추어 진다. 50,60년대 리얼리즘 사진의 유산을 받고 성장한 시사 월간잡지의 사진가들은 소외된 계층의 삶에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그들의 사진은 사회비판적 성격을 분명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신정부의 용인아래 제도권 내의 잡지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특이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가시화하여 독자들로부터 끝없는 관심을 유도하였으며 급격히 밀려오는 산업사회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자생터를 잃어가는 서민들의 나락에 빠진 자괴감을 사진에 나타내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또한 그들은 60년대 말부터 70년대 말까지 계속된 유신으로 상징되는 개발독재 시대에 우리사회가 앉고 있던 아픔을 사진가들의 눈을 통해 보여주고, 사진이 사회에서 발휘할 수 있는 힘이 무엇인가를 드러내고자 했다.
본 논문에서 검토해보고자 하는 <한국의 가족> 시리즈 사진을 찍은 사진가 주명덕(1940 -)은 바로 강운구, 전용종, 김수남, 이오봉 등과 함께 70년대 '월간중앙'이나 '세대'와 같은 당시의 대표적인 시사 월간잡지의 사진기자로 활동하면서 당시 사진의 대상성, 포토스토리의 형식, 편집 등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간 사진가들 중의 한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1966년 사진작가로서 우리 사진의 역사에 현대적 다큐멘터리 사진의 양식을 처음 선보인 <홀트씨 고아원>전을 가졌으며, 이 때의 사진들을 모아 1969년에는 도서출판 '성문각'에서 <섞여진 이름들>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 사진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 이후 1969년 그는 당시의 가장 주도적인 시사 월간잡지였던 '월간중앙'에 입사하여 8회에 걸친 <한국의 가족>시리즈를 비롯하여 <한국의 이방>시리즈, <은발의 한국인>시리즈, <명시의 고향>시리즈, <한국의 메타모포시스>시리즈, <국토서정기행>시리즈 등 총 200여회에 걸쳐 8-10장의 사 진 으로 구성된 포토-에세이를 발표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의 가족>시리즈는 그가 월간중앙 입사 후 발표한 여러 사진 시리즈 중에서 1971년 10월호 '월간중앙'에서부터 연속 8회에 걸쳐 게재한 첫 시리즈이며, 그 이후 사진작업의 방향을 짐작하게 해줄 뿐 아니라 다른 어떤 시리즈보다도 당시 산업사회로 진행하는 한국인의 삶의 양상을 핵심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진사적 차원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작업으로 손꼽아 볼 수 있겠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주명덕 작업의 배경이 되는 <석여진 이름들> 작업을 먼저 이해해보고, 그의 본격적인 한국 탐색 작업의 시작이 되는 <한국의 가족>시리즈 8회분의 내용과 주제의식, 형식 그리고 시대적, 사진사적 가치 등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근래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가족의 문제를 어떻게 사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지의 예를 보여주고자 한다.

2. <섞여진 이름들>
1966년 4월 서울의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열렸던 주명덕의 <홀트씨 고아원>전은 생활주의리얼리즘 사진의 유행이 결과했으면서 동시에 그것의 한계를 창조적으로 배반한, 본격적으로 사회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드러낸 한국 기록사진의 출발선상에 있었다. 주명덕의 홀트씨 고아원전은 당시 우리 사회의 이방지대였으며, 6.25전쟁과 그것의 결과인 미군의 주둔이 남긴 아픈 상처인 혼혈고아들의 보금자리였던 경기도 고양군 일산에 있던 홀트아동복지회의 고아원을 인물 중심으로 기록한 사진들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은 3년 후인 1969년 <섞여진 이름들 (The mixednames)>이라는 이름의 한 권의 사진집으로 편집, 출간되었다.
이 사진집은 `혈육도 없습니다. 생활도 없습니다. 물론 감정도 없습니다. 단지 내게는 검은 살갗과 거역치 못할 <숙명>만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절규하는 흑인계 혼혈고아인 이혜숙양의 사진과 함께 시작한다. 그리고 `6.25라는 민족적 참변 이후.... 15년, 전쟁이 끝났다는 것은 한국인의 착각입니다. <한국적인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라는 표제와 함께 실린 기지촌 마을의 사진으로 이어지면서 무엇인가를 응시하는 두명의 혼혈고아의 인물사진까지 95장의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95장의 사진들은 쏠리맥, 데이비드, 죠오, 남아, 혜숙, 순남.... 이들 혼혈고아들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달려있으며, 고아원 안의 삶의 모습과 혼혈고아들의 인물사진이 섞여진 것이었다.
그의 사진은 6.25 전쟁 후 15년이 지났지만 그 후유증이 남아있는 한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역사인식에 근거하면서 그 대표적인 현상을 기록한 것이었다. 분단이 고착화되어 가고 개발의 논리가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1960년대의 한국사회에서, 분단과 외세의 개입 문제를 화두로 내세운 그의 사진작업과 시대정신은 단순한 사회상의 사진적 기록에 안주해있던 1950-60년대 한국사진의 한계를 확실하게 뛰어넘는 것이었으며, 주명덕의 다음 작업들의 형식과 주제 그리고 사진적 접근을 예견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혼혈고아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주며, 그들의 문제가 결코 외국 구호재단의 원조에나 맡길 만큼 소홀히 다룰 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했다. 실제로 주명덕의 사진전이 열렸던 1966년 4월에 발행된 일간신문들의 사회면, 문화면 기사들을 보면 그의 사진이 당시 사회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966년 4월 29일자 동아일보에는 혼혈아의 교육문제라는 제목의 사설이 실릴 정도로 주명덕의 사진은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그의 사진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다시 한번 비애와 감동으로 다가온다.
주명덕의 <홀트씨 고아원>전과 사진집 <섞여진 이름들>은 사진의 예술적 가치를 사실성과 기록성에서 찾았던 해방 이후 사진계의 흐름이 거둔 최대의 성과이며, 동시에 이후 한국 기록사진의 선구적 작업으로 평가해볼 수 있다. 그 이전의 리얼리즘 사진들이 기록성과 사실성에 사진존립의 근거를 두긴 했지만 작가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개입시킨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주명덕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 당시 사진집의 후기에 적힌 작가의 말과 그의 사진들을 살펴보면 그의 사진 또한 사실과 기록의 특성을 철저하게 인식한 가운데 출발했으나, 한걸음 더 나아가 그 특성을 바탕으로 작가의 이념과 주장을 펼칠 수 있다는 사진의 생산적 의미를 터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그 예술성으로 따지면 조형예술 중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런 상태를 사진작가로서 부끄러워 할 것은 없다. 그러나 어느 분야의 예술보다 뛰어나야 될 것이며 뛰어날 수 있는 조건을 가졌다. 사실과 기록이라는 특성으로. 이것은 나의 오랜 생각이었고 하나의 주제를 선택하여 이념과 주장을 카메라에 모아놓게 하는 모티브가 되었다"

<섞여진 이름들>에 실린 주명덕의 사진들과 그 형식은 당시부터 이미 한국 기록사진의 한 전형이 되었다. 그 이후에 지속되는 월간지의 포토에세이, 포토스토리 등은 초기의 사진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의미의 다큐멘터리(사진가의 관점과 휴머니즘이 적극적으로 개입된)가 사진집의 형태로든 전람회의 형태로든 또 잡지에 기고하는 형식으로든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주명덕 개인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사회 문제와 그것을 야기 시키는 전통의 와해 과정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한국성에 집요하게 천착하는 작업의 출발선상에 서있다.

3. <한국의 가족> 시리즈
주명덕이 사진가로 이력을 시작한것은 앞서 말한 <홀트씨 고아원>전과 사진집 <섞여진 이름들>을 통해서였지만, 그것은 개인전람회 또는 개인사진집의 형태를 띠었기 때문에 그의 사진이 갖는 사회적 영향력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그가 자신의 사회적 의미를 갖는 사진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한 것은 1969년 중아일보의 출판사진부 기자로 입사하면서부터였다. 그는 바로 이곳에서 <월간중앙>의 기획 사진취재를 진행하면서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8회에 걸친 <한국의 가족> 시리즈를 비롯하여 <한국의 이방> 등의 다큐멘터리 사진들을 발표했다. 일간지에 비해 비교적 심층적이고 장기간의 기획과 취재가 가능한 시사 월간지는 그의 사진관과 세계관을 드러내고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매우 적절한 매체였다.
주명덕이 중앙일보 출판사진부에 입사한 시기인 1969년은 우리나라에서 박정희 군부독재가 강화되고 그 다음해는 10월 유신이 단행된 정치적 압제의 시기였다. 동시에 정부에서 시행한 경제개발계획 추진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면서 산업화와 그에 따른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된 시기였다. 비록 구조기능주의적 관점에서 본 것이기는 산업화의 영향은 확대가족과 친족유대를 약화시키고 핵가족화를 촉진시킨다. 도시화로 인해 인구의 수평이동이 증가하고 공동체적 생활기반이 파괴되면서 전통적 가족질서의 심각한 변화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주명덕은 이 시기의 한국사회의 특징과 한국성 그리고 사회적 문제를 가족이라는 테마로 접근했으며,전통적인 대가족의 틀을 유지하는 가족에서부터 도시적인 핵가족 그리고 개발논리에 밀려나 삶의 터전을 버리고 이주를 할 수밖에 없었던 해체된 가족에 이르기까지 당시 존재했던 우리나라 가족의 다양성과 혼란을 시각적 이미지로 정리했다.
한편 시사 월간지에 있는 여러 장의 사진으로 하나의 스토리를 엮어가는 편집형식은 그의 작업을 사회적 영향력을 갖는 장으로 전환시키는데 매우 유효적절한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은<섞여진 이름들>을 통해 주명덕이 처음 선보인 형식이긴 했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책임 있고 영향력을 가졌던 시사 잡지에서 매달 정기적으로 일정한 주제로 사진을 발표하는 것은 분명 사진의 새로운 사회적 소통제도의 성립이라는 측면에서 획기적인 일이었다. 당시 이런 유의 시사 잡지로는 동아일보에서 발행하는 <신동아>와 중앙일보사의 <월간중앙> 그리고 <세대> 같은 잡지들이었으나 비록 포토스토리 또는 포토에세이의 형태를 갖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일회성의 기획취재 형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주명덕은 사진가로서의 능력과 기획력,주제의 시사성 등에서 설득력을 가졌고, 이런 이유로 고정지면을 통해 사회적 다큐멘터리를 시사 잡지에 결합시키는 형식을 만들고, 전통을 만들었다.
<한국의 가족> 시리즈는 주명덕이 <월간중앙>에 입사해서 단발적인 <용주골>과 같은 몇몇 포토에세이를 발표한 후 시작한 본격적인 기획취재물의 첫 결과였다. 총 8개월간 8회에 걸쳐 연재된 이 시리즈는 첫 회 <유연(悠然)한 가족들>에서부터 서울시립 아동병원의 원생들을 찍은 마지막 회 <도시의 불운아들>에 이르기까지 당시 존재했던 여러 가족의 형태를 경제적, 문화적 관점에서 분석해 놓은 사진들이었다. 각 회의 테마는 포토에세이의 형식으로 꾸며져 있지만, 이들을 모두 모아서 보면 1970년대 한국의 가족, 한국인에 대한 서사시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의 양식을 취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주명덕이 한 말을 보면 사진가가 당시 생각한 이 시리즈에 대한 접근방식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한국가족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현상. 핵가족이라는 유행 속에서도 여전히 대가족주의 사상은 의식의 흐름을 지배한다고 할까. 그 현상과 의식을 추적해보려는데 이 시리즈의 의도를 두려고 한다."

이 말을 분석해 보면 사진가는 한국사회가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핵가족화의 길을 걷고 있고 마치 유행처럼 그렇게 가고 있지만,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하는 기본적 가치관은 전통적인 친족 가족 유행 현상의 괴리감에서 모순과 갈등이 시작되고 한국적 특수성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시리즈는 바로 그 부분을 시각적 사진의 이미지를 정리하고 분석해 보고자 한 것이었다.
⑴ 유연한 가족들
이 포토에세이는 월간중앙 1971년 10월호에 실린 <한국의 가족> 시리즈의 첫 번째 테마로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가족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는 8장의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의 비원에서 카메라의 셀프타이머를 장치하고 외롭게 사진을 찍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한명의 딸로 구성된 전형적인 핵가족의 사진, 전북 익산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서부터 어린 손자까지 삼대가 같이 사는 농촌의 가족, 이농 현상으로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버리고 할아버지와 어린 아이들만으로 구성된 사진, 서울 북가좌동에서 찍은 부부 두 명만 사는 예술가 집의 사진 등이 있다. 이 테마를 통해 사진가는 이 시대 한국의 가족이 다양하고 유연한 형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을 밝힘과 동시에 앞으로 전개될 시리즈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예시하고 있다.
⑵대가족의 위풍
이 포토에세이는 월간중앙 1971년 11월호에 실린 이 시리즈 2회의 사진으로 산업화와 도시화의 거센 풍랑 속에서도 여전히 대가족주의의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지키고 있는 4가족의 사진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충남 논산에 사는 서기완씨(당시 70세) 가족의 사진은 모두 다섯 장으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정점으로 4대에 걸쳐 총 50여명이 모여 사는 대가족의 사진이 눈에 띤다. 그리고 나머지 사진들도 보통 3대에 걸쳐 10여명이 넘게 모여 사는 대가족의 가족사진들이다. 사진의 화면 전체에 꽉 찬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대가족의 문화적 힘을 잘 대변하고 있다.
⑶핵가족의 고독
이 포토에세이는 월간중앙 1971년 12월호에 실린 <한국의 가족>시리즈 3회의 사진으로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새로운 가족의 형태로 자리 잡기 시작한 핵가족의 삶과 주거 공간 그리고 그들의 가족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총 여섯 가족의 사진이 실려 있고 주변 가족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주거형태이면서 핵가족의 주거공간으로 새롭게 부상하기 시작한 아파트 사진 등을 포함해 7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 이 에세이에서 사진가는 핵가족의 특징으로 주변으로부터의 고립과 단절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고독함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두 번째 사진에서 나오는 공무원아파트에 사는 김환수 씨 가족의 사진은 아파트의 콘크리트 벽과 직사각형 창문으로 고립되고 왜소해진 핵가족의 이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⑷풍요한 가족
이 포토에세이는 월간중앙 1972년 1월호에 실린 이 시리즈의 4회 사진들로 도시화에 따른 이농현상으로 생긴 도시의 가족이 아닌 전통적으로 도시에 살아왔고 일정한 경제적, 문화적 부를 향유하고 있는 세가족의 사진 3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 이 세 가족은 서울의 홍은동, 군자동, 행촌동 등에 사는 가족들이며, 특히 그 당시로는 풍요로워 보이는 단독주택의 실내공간과 잘 조화를 이루는 가족의 사진이 눈에 띤다. 가족의 구성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부모와 3-4명의 자녀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족 구성원 사이에 친밀감이 느껴지도록 만드는 사진가의 대상 접근이 눈이 띠는 사진들이다.
⑸애정이 있는 빈가(貧家)
아마 주명덕이 <한국의 가족>시리즈를 진행하면서 가장 많은 애정을 가졌고 또 사진가가 이 작업을 통해서 하려고 했던 핵심적인 내용이 들어 있는 테마가 바로 <애정이 있는 빈가>가 아닌가 한다. 지역 재개발의 와중에서 집 주변이 다 깎이고 파헤쳐 져서, 마치 외로이 떠 있는 섬처럼, 위태하고 고립되어 남아있는 빈민가 앞에 서있는 4명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있는 부산의 연산동에서 찍은 사진으로 출발하는 이 포토에세이는 총 10장의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고, 월간중앙 1972년 2월호에 실렸다.
여기에 실린 사진들은 개발의 시대에 판잣집처럼 초라하지만 삶의 터전이 되었던 집에서 밀려나 가족이 해체되고, 2-3명이 되는 어린 자식들만을 데리고 살아가는 도시빈민의 삶을 잘 표현하고 있다. 서울과 부산, 강원도 인제 등에서 사는 여러 도시빈민의 가족이 찍힌 이 테마의 사진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1970년대 초반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도시정비 사업이었던 청계천 재개발 사업의 와중에서 삶과 일의 터전을 잃고 대규모로 경기도 광주군 성남단지로 이주하는 가족들의 사진이다. 개발독재의 폭력 앞에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지만 가족을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가족 간의 유대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그리고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도시빈민 가족들의 사진이 주변의 열악한 주거환경과 어우러져 잘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 테마의 아홉 번째에 실린 성남단지 김병남 가족의 이주 장면 사진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되어, 한 장의 사진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간결하게 정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⑹그 낭낭한 呱呱聲
가족은 그 형태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주거를 공동으로 하고 경제적 협동과 출산으로 특징 지워지는 집단" 혹은 "일상적인 생활을 공동으로 영위하는 부부와 자녀들, 그들의 친척, 그리고 입양이나 기타 관계로 연대의식을 지닌 공동체 집단"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가족은 사회적으로 인정된 성관계를 갖는 부부가 그들이 출산하거나 입양한 자녀들과 공동체를 이룰 때 성립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가족의 성립에서 출산의 중요성이 강조되는데,서양에 비해 혈연의식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출산이야말로 가족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성스러운 의식으로 취급된다. 이 포토에세이는 <한국의 가족>시리즈 6회의 테마로 월간중앙 1972년 3월호에 실린 사진들이다. 사진가는 이 포토에세이에서 가족이 영위되는 가장 중요한 의식인 출산문화의 변화과정과 현상을 추적하고 있는 사진 7장을 실었다. 경기도 광주군에 있는 어느 시골 초가집에 출산을 알리는 금(禁)줄을 쳐놓은 장면의 사진에서부터 무속신앙에서 출산의 기원을 하는 행태들과 첨단의 출산에 관한 의료시설 등의 사진으로 구성되며, 사진가는 이를 통해 전통사회의 전승적 출산문화와 근대화 사회의 과학적 출산문화가 혼재하는 한국사회의 양상 그리고 가족제도 및 의식의 변화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⑺생명의 세대
이 포토에세이는 <한국의 가족> 시리즈의 7회 테마로 월간중앙 1971년 4월호에 실렸으며, 출산 후 유아기에 있는 새로운 세대의 어린아이들과 이를 둘러싼 부모들의 삶을 주제로 한 사진들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사진들을 보면 핵가족 사회에서는 출산과 동시에 자녀가 가족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됨을 알 수 있다.어린아이의 돌잔치에서부터 휴식, 가족의 고궁 나들이 장면들이 들어있는 이 사진들은 혈연을 중시하는 우리사회에서 핵가족이 존재해나가는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어린 자녀 사이에 생기는 관계가 잘 드러난다. 한편 사진들의 화면에서 어린 자녀는 항상 이미지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진가는 이를 통해 산업사회에서 가족의 기능과 구조의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사진의 내용을 형식화하는 사진가의 능력이 잘 드러난 사진인 것이다.
⑻도시의 불우아(不遇兒)들
앞서 말한 '생명의 세대'가 핵가족화의 시대에 가족의 중심이 되는 어린자녀들을 다룬 것이라면, 이 테마는 그런 가족의 구조에서 탈락해서 버림을 받아 공공의 집단 수용시설에 수용된 가족 밖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국의 가족> 시리즈 마지막 회인 이 포토에세이는 앞서 주명덕이 발표한 '섞여진 이름들'과 유사한 작업으로 경기도 일산의 '홀트씨 고아원', 서울의 '시립아동보호소', '시립아동병원' '삼육재활원' 등 불우아동 수용시설에서 부모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격리된 어린아이들의 삶과 꿈 그리고 아픔을 주제로 한 사진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이 에세이의 마지막 사진은 '시립아동보호소'에서 찍은 사진으로 철장이 쳐진 각각의 침대가 그 속에 갇혀 외로움을 떨치고 있는 어린아이 두 명의 모습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진의 이미지에서 느껴지는 단절과 고독, 외로움은 바로 그들의 삶의 실상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4. <한국의 가족>시리즈의 의미
주명덕의 <한국의 가족>시리즈가 갖는 역사성과 현대성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현대 기록사진의 규범과 양상을 검토하면서 그의 사진이 갖는 현대성을 밝히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한국사진에서 그의 작업이 차지하고 있는 역사적 위치를 검토하는 일이다. 그럼 여기에서는 먼저 현대 기록사진의 규범과 양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사진가나 학자들마다 약간씩 견해의 차이가 있겠지만, 사진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사진가의 관점을 표명하는 방식인 현대의 기록사진(Documentary Photography)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닌 사진가의 접근 방식과 태도의 문제로서 다음 몇 가지의 조건에 충족되어야 한다는데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이를 설명해보면 첫째는 사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뚜렷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사진가가 어떤 대상을 선택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된 대상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가 중요하며 그것이 분명하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둘째로 한 시대의 기록사진은 정확한 시대인식에 근거해야 한다. 사진가가 소재로 선택한 대상과 주제가 그 시대의 사사적 가치와 정서를 함축하고 있을 때 기록사진은 한 시대를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기록사진은 사진의 대상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갖추고 전달해줄 수 있어야 한다. 사진의 제 영역 중에서 정보의 정확한 전달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분야는 포토저널리즘이지만 기록사진 역시도 정보의 전달이란 매우 중요한 가치이며, 이런 이유로 기록사진과 뉴스사진의 구별이 애매해지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기록사진의 목적이자 가치는 사진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고 감동을 전달해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포토저널리즘과 기록사진을 구별해주는 핵심적인 차이로서, 정보를 중시하는 포토저널리즘이 독자에게 이성적 접근을 요구한다면 기록사진은 관객의 감정과 정서에 호소하는 예술적 성격을 갖고 있으며, 현실에 대한 깊은 존경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학문적 관점에서 보면 주명덕의 <섞여진 이름들>과 <한국의 가족>시리즈 작업은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의미로 사진을 통해 자신의 사회인식을 표출한 첫 기록사진 작업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주명덕의 사진들은 <섞여진 이름들>에서는 분명 우리의 혈육이자 비극의 산물이면서도 피부색이 약간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유리된 채 버려진 혼혈고아들의 삶을 통해 6.25의 비극과 한국사회의 모순을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 그리고 <한국의 가족>시리즈에서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한 사회의 기본적 단위이자 인간 삶의 근거가 되는 가족과 이에 관련된 주거환경의 변화와 혼재된 양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개발독재의 문제점과 그로인해 파생된 한국사회의 모습과 갈등을 추적해왔다. 이것들이 바로 그의 작업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일관된 주제의식이었다. 그가 대상으로 삼은 혼혈고아들의 삶과 초상 그리고 한국가족의 다양한 양상과 개발에 밀려 흔들리는 우리 가족의 전통은 그런 자의식의 맥락에서 비극과 모순의 상징적 요소로 기능했다.
주명덕의 작업과 그 이후 나타난 일련의 비슷한 유형의 사진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미학적 가치는 그것이 작가의 시대인식과 자의식에서 비롯된 사회적 현상에 대한 관점의 표출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이 하나의 미학적 가치로서 긍정될 수 있는 것은 그 자체가 단순한 대상의 살핌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에게 주어진 삶을 토대로 형성된 자의식이 개입하여 사회적 현상을 적극적으로 해석함과 동시에 이를 시각화시키는 과정이 총체적으로 결합하는 하나의 인식론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초점이 되는 문제들에 대한 앞선 의식과 성찰이 거기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진의 형식 또는 언어로 소화되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성적인 이해가 아니라 정서적 감동으로 다가오도록 하는 점이 그의 사진적 비전이며 사진가로서의 능력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진의 피사체가 되는 사물의 대상성 - 열려진 가운데 있는 특정한 대상의 선택이란 결국 작가가 세계에 접근하는 첫 번째 수단이라는 점에서 - 이 먼저 중요하게 파악되어야 하고, 기록적 가치에 대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대상의 포착과 기록을 통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드러나고 전달될 수 있을 때 한 작가의 관점은 사진의 미적 가치로서 긍정되게 된다. 여기에 더해 사진의 내용과 대상에 대한 사진가의 인식이 시각화되어 하나의 형식으로 승화될 때 사진의 미학적 완결성을 담보하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사진형식의 등장은 외부 형식의 차용에서 가능한 것이거나 지나친 형식주의의 집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진의 대상과 사진가의 인식이 관객에게 시각적인 감동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주명덕의 <섞여진 이름들>과 <한국의 가족>은 그의 작업 이후 한국사진의 중요한 미적 태도와 형식으로 자리 잡는 다큐멘터리의 가치를 실현한 최초의 작업들이었다.

5.
기록사진은 다른 분야의 사진과는 달리 한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환경에 따라 그 성격과 가치가 달라진다. 그것은 사진을 통한 기록이 기록되는 현실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고, 역사적 사실의 보존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현상에 대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결국 기록 또는 기록사진이란 대단히 역사적이면서 비평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기록사진은 정치권력에게는 견제와 규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독일의 나치 정부가 아우구스트 잔더의 사진작업이 대항적 성격을 띠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탄압하고 출판을 금지한 사실에서 우리는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주명덕의 작업까지의 훌륭한 전통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1970년대에 80년대 초반까지 유신시대와 5공화국을 거치면서 한국사진에서 괄목할만한 기록사진의 성과가 눈에 띠지 않는 것은 기록사진의 비평적 성격과 권력의 견제라는 측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진가들의 무기력한 대응과 도피에 면죄부를 줄 생각은 없다. 1980년 5월 광주의 민중항쟁과 이후의 상처 그리고 지속된 과정 에 대한 진지한 기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사진가들의 치열한 반성을 요구한다. 진정한 기록 그리고 기록사진의 가치는 어려운 시대일수록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 기록사진의 역사에서 이 시기는 심한 전통의 단절 현상이 보인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진에서 기록사진의 전통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보이는 것은 필자에게는 무척 고무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기록이란 단순한 역사적 자료의 남김만은 아니다. 그것은 현실 사회에 대한 비평이며 동시에 역사의 교훈인 것이다. 기록사진은 사진발명 이후 사진의 역사를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오늘날은 상당히 다양한 기록의 매체가 개발되어 있고, 어쩌면 사진은 기록의 중요한 역할을 다른 분야 즉 새로운 영상매체에게 넘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록사진만의 독자적 기능 즉 삶과 사건의 기록과 이에 따른 대상의 현재화 그리고 사진가의 의지 반영과 대상에 대한 주관적 해석의 폭넓은 가능성 때문에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사진 방법론이 되는 것이다.
주명덕의 <한국의 가족>시리즈는 그것이 비록 잡지사진의 형태를 띠고 있다할지라도 한 사진가의 시각과 사회적 비판의식이 사진의 형식으로 승화되어 나타난 우리 사진의 훌륭한 전통일 것이다. 지난 개발독재의 시대를 지나면서 우리가 경험했던 삶의 조건의 급격한 변화와 가치관의 혼동, 그리고 이를 헤쳐 나오면서 우리가 겪었던 절망과 희망이 그 시대를 산 가족의 모습으로 주명덕의 사진을 통해 섬세하게 다가온다. 이에 더해 한국사진의 역사라는 측면에서 그 시대의 가족의 변화와 갈등은 새로운 사진의 형식 즉 다큐멘터리 사진의 형식을 우리에게 선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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