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활동

2차 사진세미나 <한국문화와 사진>

페이지 정보

작성자 kowpa 작성일06-06-27 18:09 조회1,853회 댓글0건

본문

2차 사진세미나 <한국문화와 사진>

일시:2003년 12월5일(금:오후3시/서울여성플라자)
주제: 한국사진사 - 한국문화와 사진
강사: 김승곤(국립순천대학교 사진과 석좌교수)



문명의 쇠락
수많은 인쇄물, TV, 인터넷… 지구 전체가 온통 영상으로 둘러싸여 있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하루에 보통 1000장 정도의 이미지를 보며 살아간다고 한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한 평생을 살아도 볼 수 없었던 양을 하루에 보는 셈이다. 그래서 지구를 ‘이미지 혹성(image planet)’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 안에 사는 우리는 가히 ‘이미지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태를 만들어낸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출현한 지 160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 사진이다.
그러나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여전히 사진의 미학이나, 아니면 보도, 기록, 광고와 같은 사진의 기능적인 측면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상환경이 아무리 빠르고 광범위하게 변화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사진에 관한 한 우리는 아직 원시의 동굴생활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사진은 ‘사진’이라고 하는 카테고리를 벗어나서 보다 확대된 영역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문화와사진」이라고 하는 주제도 그런 의도에서 나에게 주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화나 사진의 어느 쪽이나 그 전체 상을 그려내는 일이 나에게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오늘은 문화가 사진을 어떻게 바꿔 나왔는가에 관해서 한정된 국면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문화란 일반적으로 어떤 지역에서 오랜 사간에 걸쳐 축적되어 계승되는 습관이나 지식, 정신적인 가치를 말한다. 문명이나 문화는 자연과는 대립되는 개념이지만, 문명이 물질적인 면이 강조되는 것에 비해, 문화는 정신적인 면이 강조된 가치로서 인식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1960년대 이후 우리는 서구의 문명과 문화를 모델로 근대화를 추진해 나왔다. 상상력보다 실질적인 기능이 중시되었고, 사람들의 의식 가운데 남아있는 모든 ‘불합리하고 전근대적인 것’들을 몰아내는 대신, 그 자리에 인위적이고 합리적인 지식 공간이 자리잡았다. 서구적인 문화와 문명을 성취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개발도상 국가들이 지향하는 지상의 목표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과 공해, 질병 같은 서구문명이 빚어낸 부적인 측면들이 드러나면서 문명이 네거티브한 이미지를 띄게 되고, 그 대신 문화가 우위의 개념으로 정착되기 시작한다. 문화입국, 문화선진국, 문화상품 같은 용어들이 긍정적인 의미로 쓰여지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그뿐 아니라 문화는 음식문화, 음주문화, 교통문화에 심지어는 화장실문화 같은 대중적인 수준에까지 일반화되었다.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문화가 온 천지에 만연해 있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으로서의 문화는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어떻게 바꿔 나왔는가.

사진이라고 하는 미신
사진술의 발명은 과학문명의 소산이지만, 그 사진술이 만들어내는 것은 문화적인 가치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진이 현대적인 개념의 문화의 범주에 속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계산에 넣는다고 할지라도, 도입 초기에 사진이 빚어낸 미신은 신앙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리고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사진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정당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신앙은 사진이 사람의 혼을 뺏는다는 것이었다.
「한국사진사」를 펴낸 최인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처음 사진에 들어왔을 무렵에는 두려움에 질린 사람들이 몰려와 영업사진관에 불을 지르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카메라가 사람들의 혼백을 뺏어 가는 것으로 믿었고, 혼을 뺏긴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진이 사람의 혼을 뺏는다는 얘기는 지금 같으면 초등학생들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물과 똑 같은 모습이 옮겨진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의 완고한 노인들의 놀라움과 분노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프랑스의 문호 오노레 바르자끄 조차도 손에 든 사진이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무한한 엷은 그림자들의 층이 한 장씩 벗겨져서 종이에 옮겨 씌워진 것’이라고 믿었을 정도다.
옛날에는 사진은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 - 말하자면 살림이 넉넉했거나 일본에 건너가서 신 문물을 누릴 수 있었던 소수 사람들의 특권적인 과학의 은혜였다. 그러던 것이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이 끝나는 195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들어오는 카메라나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별로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도 집안일 돌보지 않고 문자 그대로 사진에 ‘넋’을 빼앗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진가가 세상을 뜨자마자 그의 가족들이 맨 먼저 한 일은 그들의 혼을 빼앗은 사진(필름)을 불살라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진사에서 중요한 사진가 가운데에서도 작품이나 원판 필름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다.
어떤 사진가 한 분은 오래 전부터 자신의 가족을 찍어오고 있다. 지금은 그 자녀가 결혼해서 손자(녀)를 낳았을 것이고, 아마 지금도 그 손자들을 가족사진에 넣어서 찍고 있을 것이다. 그의 그런 행위는 말하자면 그의 가족에 대한 애정과 시간을 사진이라고 하는 움직일 수 없는 네모난 공간 속에 담아두려는 것으로, 그에게 있어서는 가장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확인하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인을 미개인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그들이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 있는가 아닌가에 달려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원시의 미개인들에게는 ‘나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전혀 무의미한 것이다. 미개인의 경우는 단순히 ‘나는 ***이다.’ 라는 것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단순한 가족체계나 사회구조 속에서 그들은 집단 가운데에서 누구나 개개인이 확고부동한 역할을 가진 유일한 존재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 사람들은 복잡화되고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역할이나 위치를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서 ‘나는 ***이기 때문에 나다.’라고 하는 데카르트적인 질문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근대의 자아 의식의 혼란
사진술이 공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880년대에는 파리에서만 수백 개가 넘는 초상사진관이 개업해서 성황을 누렸다. 초상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은 앞다투어 카메라 앞에 앉았다. 그들은 왜 그처럼 초상사진에 정신을 빼앗기게 되었는가? 그것은 사진술의 급속한 확산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 일부 특권계급에게만 허용되었던 초상화는 그들의 사회적인 계급과 재산과 권력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신분 기호였다. 사진술의 출현에 의해서 기계에 의한 초상화가 대중 레벨에게까지 확산되기는 했지만, 사진이 대중화되기 이전까지는 서양에서도 사진은 일부 유복한 계층의 고상한 취미를 위한 도구였다는 사실을 사진사에서 읽을 수 있다.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기간 동안 사진은 여전히 부유한 사람들의 고상한 취미나, 제2의 회화의 자리를 노리는 예술이나, 이국의 신기한 풍광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사진의 역할이 경제나 시각정보의 유통의 도구로서, 그리고 인간의 시각과 세계에 대한 인식의 방법과 같은 다양한 갈래로 복잡하게 분화되기 시작하는 것은 20세기 초에 들어 서면서부터의 일이다.
그때까지 사진이 갖고 태어난 역할과 기능에 관해서 정확하게 지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사진은 자신의 역할과 기능을 스스로 믿을 수 없을 만큼 넓혀 나왔고 지금도 빠른 속도로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한 사진의 본성은 예술과 경제, 또는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라고 하는 한정된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인류학이나 사회학, 철학, 심리학, 경제학과 같은 인문사회과학의 모든 측면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진은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맹목적인 믿음을 보장 받을 만큼 단순한 매체가 아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유럽에서 사진관이 처음 생겼을 무렵에는 사진을 찾으러 온 사람들 가운데에는 여러 장의 사진 가운데 자신의 얼굴이 어느 것인지 몰라서 남의 사진을 들고 좋아하거나, 심지어는 사진에 찍힌 모습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사진사로부터 건네 받은 사진에 대한 그들의 최초의 반응은 ‘이것은 바로 나(의 모습이)다.’ 라는 것과 ‘이것은 내가 생각(기대)하고 있던 내가 아니다.’갈라졌다고 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모습에 대한 바람(환상)과 눈앞에 보여지는 사진 상(현실)과의 충돌에서 일어난 최초의 혼란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자신이 인정하건 말건 사진에 찍혀있는 것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 하나의 신앙을 만들어내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이 혼란(착각)은 사진 특유의 기록성과 기록된 것의 사(진)실성과 결합됨으로써 눈으로 보는 것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심어주게 되는 한편, 사진이 ‘환영’을 만들어내는 자동적인 메커니즘으로서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근대 특유의 자아 의식의 혼란도 그와 때를 맞추어 야기되기 시작한다. 사진은 말하자면 근대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쏘아 올려진, 새로운 시각세계를 여는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가족사진을 통한 자아확인
마치 강박관념에 쫓기기라도 하듯 수십 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가족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안정되게 이어지고 있는 가족이라고 하는 관계(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족이라고 하는 구도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확인하려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매년 찍어나가는 한 장 한 장의 사진 가운데에는 그런 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그의 신념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정착된다. 종이 위에 나타난 화학상은 그 자신의 가족 가운데에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존재증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발자크 식으로 말하자면, (가족이라고 하는) 현실의 외피를 한 꺼풀씩 벗겨내서, 종이(사진) 위에 다시 겹겹으로 씌워나가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한 장 한 장 혼을 담아 쌓아 가는 가족의 역사, ‘과거에 그 곳에 있었다.’ 라고 하는 움직일 수 없는 존재 증명, - 그것은 ‘과거’의 한 장면을 위해서 ‘현재’의 시간을 화석화시키는 신앙적인 의식인 것이다.
신앙은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쪽 끈이 풀려서 길바닥에 늘어진 플래카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응원단원의 모습, 위대한 지도자의 초상사진에 선풍기 바람을 보내고 있는 장면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마 집단적 강박관념이라는 말을 떠올릴 것이다. 가슴에 붙은 뱃지, 지갑 속에 소중하게 간직된 가족의 사진은 그들에게는 단순한 종이 위에 정착된 상이 아니라 실물보다 더욱 확고한 현실로서 인식된다.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그림자를 현실로 믿고 호수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만일 나르시스가 물에 비친 그 아름다운 얼굴이 단순한 광학적인 반영 - 하나의 일루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수선화에 관한 슬픈 전설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TV 연속 드라마에서 변심한 애인의 사진을 눈물을 흘리며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히로인의 모습을 본다. 그것은 그녀가 사진에 얽힌 달콤한 기억과 사연들을 지워버리기 위한 것이고, 애인이라고 하는 존재를 자신의 기억으로부터 영원히 지워버리려는 심리적인 말살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웃는 모습이 찍혀진 사진을 찢는 그녀의 절박한 행위를 누가 한낱 미신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인가? 사진이 사람의 혼을 뺏는 것으로 믿고 사진관에 불을 질러야 했던 옛날 할아버지들의 우려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이렇게 현실로서 그 마성(魔性)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은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인가
1950년대, 아프리카 오지의 이른바 문명화되지 않은 지역의 원주민에게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고 반응을 조사하던 한 인류문화학자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한참 동안 손가락으로 사진 위의 은화상의 윤곽을 더듬어가던 원주민이 사진에 찍혀있는 것이 다름 아닌 ‘영국신사’ 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사진은 누구나 거기 찍혀있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진에서 무엇인가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생득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믿으려 들지 않을 지 모른다. 그러나 사진에 찍혀있는 대상의 정체를 읽어내는 능력은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 습득되는 후천적인 능력이다. 다시 말해서 문화적으로 배양된 고도의 인지능력인 것이다.
이러한 사진의 신앙을 만들어낸 것은 사진의 극명한 기록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사진은 언어나 그 밖의 어떤 매체보다도 빠르고 세밀하게 모든 것을 기록하고 그 내용을 전달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뇌의 기억 용량과는 관계없이 사진을 통해서 언제라도 과거의 시간과 공간, 체험들을 생생하게 다시 재현해낼 수 있다. 과거를 되살릴 수 있다는 사실 - 사진은 그 능력만으로도 신앙이 되기에 충분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
모든 현재는 과거가 되기 위한 시간이다. 사진으로 찍히는 순간 모든 대상과 시간과 장소들은 과거의 세계로 편입되어버리고 만다. 지금까지 자신이 일생 동안 어떤 장소에 있었으며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가 - 사진은 우리의 삶이 무한하게 이어진 시공간 가운데에서 지극히 제한된 지점을 질러나가는 한 순간의 드라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환가시켜 준다.

또 하나의 시각장치
195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사람들은 피사체로서 카메라 앞에 서는 쪽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찍는 쪽으로 돌아섰다. 노을 진 하늘과 운해가 깔린 골짜기를, 귀여운 애완견을, 운동회에서 달리는 아이들을, 바닷가나 공원이나 관광지에서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셔터를 눌러댄다.
하수도 공사를 마친 작업원이 작업결과를 보고하기 위해서 바로 옆 모퉁이에 있는 편의점에서 단돈 7천 원을 내고 카메라 한 대를 사온다. 몇 년전 강화도 전등사에 갔을 때, 초등학교 3, 4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 여럿이 카메라를 갖고 나온 것을 본 일이 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그냥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솜씨로 대웅전 처마의 단청이며 문살 같은 것을 찍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사진이 단순한 기념이나 기록의 도구만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장치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한여름 바다나 이름난 관광지를 찾아 집을 나선다. 조금 여유가 있다면 유럽의 고풍스런 도시를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풍광이 있고 유구한 역사가 새겨진 유서 깊은 건축물들이 있다. 시간이 아까운 여행자들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그 앞에 늘어서서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기념사진 촬영이 끝나면 다음 관광명소로 이동한다. 그곳에 있는 모든 것들은 오직 그들의 유럽여행을 증명하는 배경으로 사진화되어버리고 만다.
그들은 아무도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삶의 광경 속의 시간을 살고 있지 않다. 그들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지금 눈앞에 있는 광경이 과거의 세계로 편입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가깝거나 멀거나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그 과거의 광경을 현실로서 되살리기 위한 기억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 오직 셔터를 눌러 대는 일에 몰두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이 카메라에 채집하고 있는 지금 눈앞에 전개된 ‘현재’는, 얼마쯤 시간이 지난다음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과거’를 재생하기 위한 보조적인 기억장치다. 그것은 ‘바로 지금’이 아니라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비로소 출현이 가능한 ‘과거의 현재’인 것이다. 이 도착(倒錯)된 세계!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바로 지금 우리 눈앞에 살아있는 현실로부터 ‘현재’ 라고 하는 시제(時制)를 제거해 나가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시간이여, 멈춰라!
사진을 찍고 있는 동안 사람들은 이처럼 현실의 시간으로부터 소외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그토록 기념사진을 찍는 일에 열중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느 CF에 나오는 대사처럼 ‘시간이여, 멈춰라.’라고 하는 오직 한가지 바람을 위해서다. 모든 사진은 시간을 정지시켜서 순식간에 그것을 화석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죽은 자까지도 언제까지나 살아있는 모습으로 보존하는 사진이야말로 ‘영원한삶(不死)’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가장 완전한 형태로 완성시킨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고대 이집트 왕족의 미이라, 스탈린, 호치밍, 김일성의 시신들은 그들의 숭배자들에 의해서 영원히 변질되지 않는 모습으로 방부 처리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절대 권력자가 아닐지라도 누구나 영원히 살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대대손손 남겨놓을 수 있다. 그리고 앨범을 펴는 순간, 그들은 어느 구석 하나 변질되지 않은 모습으로 언제라도 다시 가족들 눈앞에 되살아나는 것이다.

직관상(直觀像)으로서의 사진
「홀론 혁명」(1967)에서 아더 캐슬러(Arther Kestler)는 기억 내용을 일반화하거나 조직화시키는 ‘추상적 기억’과 순간적으로 기억을 응고시켜버리는 ‘스포트라이트형기억’의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추상적(Abstract) 기억이란 마시고 난 다음 글라스 바닥에 남아있는, 맛도 향기도 거의 날아가 버린 와인 찌꺼기 같은 기억이다. 말하자면 건질만한 구체적인 기억 자료가 거의 없이 단지 약간의 냄새만으로 기억을 다시 구축 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반대로 스포트라이트(Spotlight)형 기억은 마치 각성제에 의해서 떠오르는 환각적인 정경과 마찬가지로 선명하게 어떤 사상(事象)의 디테일을 상기시키는 기억을 말한다. (밝혀두지만 나는 결코 각성제를 시도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상기되는 정경은 마치 클로즈업으로 구석구석 선명하게 찍힌 사진과 같다. 즉, 우리의 기억은 그런 순간적으로 전체의 모습을 떠올리는 스포트라이트형 기억과, 김이 서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흐릿한 풍경과도 같은 ‘추상적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전자는 직관상(直觀像)의 형태를 갖고 있으며, 특별한 문화를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살았던 미개인과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이 직관능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생득적인 그런 일반적인 직관 능력은 성장과 교화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소멸되어버리고 그 대신 점차 추상화 능력이 강화되어 나간다. - 다시 말해서 인간은 원래 원시인이나 문명을 모르는 미개인과 마찬가지로 직관적인 시각체계를 갖고 태어나지만, 문화적인 환경 속에서 그 직관 능력이 무의식으로 침잠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사진의 힘을 빌어 연속된 시공간 가운데에서 어떤 특정한 장면을 잘라내어 기록하려는 것은 어쩌면 추상화(抽象化)와 같은 개념적 사고능력의 발달에 의해서 잃어버린 직관적인 기억능력을 복원하려는 본능적인 행위로 보아야 할 지도 모른다. 카메라는 바로 이런 직관적인 기억으로 기능하는 가장 뛰어난 또 하나의 뇌(腦)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외부의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인식할 때는 일반적으로 그 인식 대상의 외관을 분석적으로 파악하려는 태도와, 그 대상의 내면의 탐색을 통해서 파악하려는 두 가지 태도를 취한다. 그것은 케슬러가 말한 기억의 두 가지 유형과 일치한다. 따라서 스포트라이트형 기억에 비유될 수 있는 직관(Intuition)은대상을 전체가 아닌 부분적 요소를 통해서 인식하고, 눈앞에 나타나는 외면적인 부분 가운데 내재되어 있는 전체적이고 불변하는 구조를 찾아내려는 태도를 말한다.
사진은 우리가 다른 어떤 매체를 사용해서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그것이 아무리 복잡한 것이라 할지라도 사진을 통해서 우리는 모든 사태를 순식간에 파악해버리고 만다. 사진을 바라본다는 것은 이처럼 불확실한 기억을 직관적으로 살려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바로 문화적인 행위다.
그러나 사진의 직관적 능력에는 때로는 세계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큼 결정적이고 커다란 함정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롤랑 바르트가 사진의 패러독스를 말하고, 사진을 ‘코드가 없는 메시지’ 라고 지적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퇴행하는 기억
카메라는 이처럼 직관적인 기억을 남기는 의사적(擬似的)인 뇌라고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뇌의 대용품일 뿐 뇌 그 자체는 아니다. 우리가 이 의사적인 뇌로서의 카메라라고 하는 기록장치에 의한 ‘문화적인 제도’가퇴화시켜 나온 직관적인 기억 능력을 보상 받으려고 하는 시도는 오히려 직관력은 물론 추상화나 개념화의 능력마저 더욱 퇴행(退行)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세계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공하는 지식과 경험내용은 직관적인 체험을 통해서 파악된 대상을 언어화(추상 또는 개념화)시킨 결과로서 형성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신체적 전 감각과 정신활동을 통한 직접적인 경험 대신, 카메라의 직관력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여행지에서 돌아와 그 사진을 보며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 사진(에 찍혀있는 대상들)이 갖고 있을 지도 모를, 한껏 미화된 가공의 현실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설명일 뿐, 자신이 그 자리에서 체험한 생생한 현실 그 자체는 될 수 없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에 의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가고 있다. 자동차의 계기판, 손목시계, 체온계, 저울, 그리고 인터넷…. 우리들의 일상생활은 온통 형광색 디지털로 뒤덮여 있다. 속도나 온도나 무게가 바늘로 지시되는 아날로그의 물량의 세계는 급격하게 사라져가고 있다. 정보화 시대로 일컬어지는 지금, 인류가 모든 채널을 통해서 상상할 수 없는 규모로 영상의 생산과 소비를 거듭하고 있는 동안, 우리의 현실은 디지털 정보만으로 구성된 비현실적인 세계로 변해버릴 지도 모른다. 디지털 카메라의 모니터에 떠오르는 화상은 모두 1과 0의 숫자를 변환시켜서 만들어낸 환영인 것이다! 우리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세계의 비 현실화는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문화’와 ‘정보’가 우리 시대와 사회 전반의 키워드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영상은 우리의 세계에 대한 직관 능력을 퇴화시키고, 그 결과 우리의 현실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에 다다르고자 하는 본능적인 열망을 깊고 어두운 기억의 늪 바닥으로 영원히 가라앉혀 버리고 마는 것은 아닐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