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활동

2차사진 워크샵 <환경위기와 문명 패러다임의 대안 생태여성주의>

페이지 정보

작성자 kowpa 작성일06-06-27 18:12 조회1,966회 댓글0건

본문

2차사진 워크샵 <환경위기와 문명 패러다임의 대안 생태여성주의>

일시:2003년 5월 10일(토:오후3시~)
주제:환경위기와 문명 패러다임의 대안 생태여성주의
강사:한면희 (서강대 연구교수, 환경정의시민연대 환경정의연구소 소장)



1. 역사 속의 계급 문제와 인종 문제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서 숱한 문제가 발생했다. 그것을 유형별로 분류하면 크게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계급 문제다.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착취함으로써 나타나는 이 형태는 시대를 달리하면서 다르게 나타났지만 기본 틀은 같다. 과거 노예제 사회에서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드러났고, 봉건제 사회에서는 귀족과 농노의 형태로, 그리고 자본제 사회에서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관계로 설정되었다. 서양에서의 프랑스 대혁명이나 조선에서의 동학 혁명은 모두 지배와 피지배 관계의 억압을 청산하려는 처절한 저항의 몸부림이었다. 이것이 현대 들어서서 민주주의의 실질적 진전과 더불어 상당히 완화되지만, 여전히 노동소외로 인한 문제로서 사회 문제의 핵심으로 간주되고 있다.
역사의 또 다른 핵심 문제로 인종 문제를 들 수 있다. 오직 피부색에 따라서 진행된 이 문제는 백인종에 의한 흑인종의 수탈로 나타났다. 아프리카에서 영문도 모른 채 잡혀온 흑인들은 미국 남부 목화농장에서 짐승과 같은 대우를 받으면서 혹독한 시련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2. 페미니즘의 문제와 전통적 여성주의
역사 속의 문제는 계급간 갈등이나 인종간 갈등으로만 국한되지 않았다.비록 현대 사회로 이행하면서 만주화가 진전되고 있었지만 구조화된 또 다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인식이 싹텄다.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이 그것이었다.
첫 번째 여성주의(feminism)의 물결을 주도한 것은 자유주의(liberalism)였다. 개개인이 구현하고 있는 이성이 인간의 본질을 규정짓는 것으로 간주되면서 합리적 선택에 따른 경쟁이 중시되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자유가 최고의 덕목으로 찬사를 받게 되었다. 따라서 남녀 누구나 이성을 구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형식적으로 차별을 받을 이유가 없으며, 이에 따라 법적인 제반 차별을 불식시키려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일각에서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한계가 노출되었다. 이성에 근거한 형식적 차별의 철폐가 실질적 여성 억압을 불식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적 여성주의(marxist feminism) 시각은 분명했다. 남성의 사회적 노동은 화폐로 지급을 받는 노동인 반면, 여성의 가사 노동은 화폐로 환전되는 노동이 아니었다. 물질이 중시되는 경제사회에서 당연히 비임금노동 종사자인 여성은 임금노동 종사자인 남성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남녀가 평등한 지위에 놓이려면 당연히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전업노동자가 되는 길뿐이다. 그래서 여성 모두가 남성과 마찬가지로 전업 노동자가 되었다고 하자. 문제는 해소되었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에 의한 임금 노동 착취가 구조적으로 자행되는 사회에서 문제는 여전히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적 여성주의는 모든 여성에게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대열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 결국 마르크스주의에서 여성 문제는 계급 문제로 해소될 문제로만 보였다.
두 번째 여성주의의 물결은 급진적으로 출현했다. 급진적 여성주의(radicalfeminism)는 형식적 자유가 보장되고 경제계급이 사라진 사회에서도 실질적인 여성 억압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별(gender)의 차이를 보고 그것에 도전하지 못하는 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오랜 세월에 걸쳐서 형성된 남성 중심의 사회적 가부장제(patriarchy) 풍토가 본질적으로 여성 억압을 구조화하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가부장제의 청산과 여성성의 회복이 촉구되었다. 이어서 사회주의 여성주의(socialist feminism)는 마르크스주의와 급진주의 양자를 종합해서 계급 문제와 가부장제 구조 모두를 타도 대상으로 삼게 된다.


3. 환경위기와 생태주의의 출현
계급과 인종, 성에 의한 문제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인간간의 관계에서 출현했던 반면, 20세기 들어서서 새로운 형태의 문제도 나타났다. 그것은 환경 재난의 고조에 따른 생태위기의 문제로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비롯되었다. 20세기 초중반 산업 선진국에서 초래된 재난은 환경제국주의의 흐름 선상에서 후진국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20세기 중후반 들어서서는 전지구적 재앙으로 증폭되었다.먼저 과학기술에 의거하여 문제를 신중한 관리에 의해 풀고자 하는 보수적인 기술 중심의 환경주의(techno-centric environmentalism)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런 접근으로는 문제를 다소 천연시킬 뿐 위기 도래를 촉발시키고 말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래서 급진적 생태주의(ecology) 사상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4. 새 문명의 대안 생태여성주의: 여성주의와 생태주의의 만남
급진적 생태주의의 한 흐름을 주도하는 심층생태주의(deep ecology)는 인간 중심의 지배적 세계관이 문제의 근원적 뿌리라고 여겨서, 생태 (또는 자연) 중심의 세계관으로 이행할 것을 요구한다. 반면 또 다른 한 흐름을 주도하는 사회생태주의(social ecology)는 인간 사회 내에서의 구조적 요인인 계층화(hierarchy) 의식과 구조가 인간 사회에서 숱한 문제를 초래했고 또 그것이 인간과 자연의 영역으로 이행하여 환경 문제를 발생시켰다고 주장한다. 생태여성주의(eco-feminism)는 이런 흐름에 영향을 받아서 태동했다. 즉 전통적인 여성주의와 생태주의의 접목 차원에서 세 번째 물결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생태여성주의는 인간 사회 내에서의 가부장제 구조가 여성 문제를 초래하고, 이어서 자연의 영역으로 이행하면서 환경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고 본다. 그 도식은 다음과 같다: 가-1) 자연에 대한 억압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억압과 같은 구조를 이룬다. 가-2) 여성에 대한 억압은 사회적 지배의 주요한 한 형태이다. 따라서 가-3) 자연 억압으로 초래된 환경 문제는 사회의 가부장적 지배 구조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의 구조는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다른 문제와 공통되는 것이 있고 또 다른 것이 있다. 즉 주객 분리주의(subject-object dichotomy)와 우열에 따른 지배 논리(logic of domination)가 문제 초래형 문명 패러다임의 핵심이다. 우월한 주체로서의 지배계급(주인, 귀족, 양반 등)과 백인종, 남성이 열등한 피지배계급(노예, 농노, 상놈 등)을 대상화하여 착취?수탈?억압한 결과 계급 및 인종, 페미니즘의 문제를 초래했다. 연장선상에서 우월한 주체로서의 인간종이 열등한 자연적 존재를 대상화하여 수탈한 결과 환경 문제가 발생했다. 그렇다면 생태여성주의는 해법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또 달리 말해서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 문명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생태여성주의는 전통적인 다양한 여성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는 탓에 다른 급진적 생태주의 사상에 비해 단일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다변화되어 있다. 다만 최근에 들어서서 크게 둘로 분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나는 문화적(cultural) 생태여성주의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social) 생태여성주의로 부를 수 있다. 양자의 차이는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 논리를 확인하는 데서 발견할 수 있다. 가치 차별화에 따른 지배 논리는 다음과 같다: 나-1) 남성은 보다 이성적이고 여성은 보다 감성적이다. 나-2) 이성이 사회적으로 감성보다 더 가치가 있다. 따라서 나-3) 남성이 여성에 비해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어야 한다.
문화적 생태여성주의(또는 자연 여성주의)는 여성 고유의 방식으로 경험하고 이해할 것을 촉구한다. 즉 여성성을 적극 강조한다. 이 입장에서는 자연을 구하는 데 여성이 남성보다 더 적합하다고 주장하면서, 남성에게 우리 여성을 따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때에 따라 이성 격하 운동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 감성을 적극 고무하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또한 과거 종교적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던 영성(spirituality)을 고무 찬양하는 형태로 진행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구 여신 가이아(Gaia)의 등장은 너무 반가운 소식이다. 보다 급진적으로 흐르면, 지구 여신이나 숲에 깃들어 있다고 여겨지는 정령을 부활시켜 경배와 찬양으로 유도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문화적 생태여성주의는 급진적 여성주의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견해로 보인다.
반면 사회적 생태여성주의는 보다 냉정하게 문제를 보고자 한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자연에 가깝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것은 문제를 역전시켰을 뿐이기 때문에 문제를 푸는 바른 해법일 수 없다고 진단한다. 사회적 생태여성주의는 사회에서 갈등과 경쟁보다는 협력과 존중을 내세운다. 오늘의 과학(기술)이 지배적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비지배적인 대안 과학(기술)으로 대체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자연에 대해 배려의 자세로 다가가고자 한다.


5. 전망
생태여성주의는 아직 세련되게 다듬어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 특히 문화적 생태여성주의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또 다른 곳으로 이끌 수 있다는 한계도 드러낼 수 있다. 또한 다른 생태주의 사상의 장점을 수용할 수 있는 보다 폭넓은 자세도 요구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태여성주의는 환경위기 시대에 새 대안 문명의 패러다임을 짜는 데 있어서 대단히 유용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특히 이성에 눌려 빛을 발하지 못한 감성과 영성을 제자리로 복권시키는 데 있어서 대단히 소중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즉 생태적 이성과 감성, 그리고 영성이 사회는 물론 자연과의 관계 영역에 있어서도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자연 친화적으로 지속 가능하면서도 정의가 구현되는 새 문명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생태여성주의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