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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사진 워크샵 <왜 여성주의 시각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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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owpa 작성일06-06-27 18:13 조회2,0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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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여성과 자연"에 관한 워크샵

1차사진 워크샵<왜 여성주의 시각이 필요한가?>


일시: 2003년 4월 19일(토:오후 3시/한미갤러리)
주제: 왜 여성주의 시각이 필요한가
강사: 박영숙(페미니스트 포토아티스트, 여성사진가협회 전회장)



<서론> 여성사진가협회에서 전시되었던 제1회'색동저고리'전, 제2회 '여자들의 밥그릇'전, 제3회 '여성과 시간, 여성과 공간'전, 제4회 여성과 자연?전 (2003년 10월 전시예정)을 보면, 제1회때는 특정한 컨셉하에서가 아니라 여성사진가 협회 회원들의 작업을 역사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고, 제2회는 여자들의 밥그릇전으로 여성주의적 컨셉을 가지고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제 3회부터는 뚜렷한 컨셉을 가지고 워크샵을 통해 전시를 위한 계획과 준비 과정을 거쳐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컨셉을 가지고 공동작업을 해야하는 데서 오는 심리적 거부와, 주어진 주제를 가지고 자신의 작업을 다루어가는 방식에 대해 난해함을 표명하는데서 오는 어려움과 주제를 명확히 드러내는 작업이 절반에도 못미쳤다. 그동안의 전시들은여성의 삶이 무엇인가, 왜 여성사진가협회라는 집단이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과 생각을 가진 다양한 성원들로 구성되어져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자신과 자신의 작업을 변화시키고 보다 새롭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작업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우리들의 노력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왜 에코페미니즘적 시각과 사고가 필요한가에 대해 논의를 해보려고 한다.


그간의 작업들을 보면 사진미학조차도 컨셉의 구축이나 실천형태가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뿐만 아니라, 시각예술과 사진이 서로 융화되지 못하고 각기 별개로 존재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사진은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타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해왔고, 20C부터는 시각예술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의 수용이 왜곡되어 사진계가 주체적 역할을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소외당하는 자세를 견지해온 것은 우리 사진가들이 자성해야 할 일이다. 2000년 초부터 사진계에서 서서히 변화가 일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깨어나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어떠한 미학적 시각을 갖고 연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상태에서 여성사진가협회라는 그룹이 생겨나게 되었다. 제도권안에서 안정되어 안주하고 있는 남성그룹과는 달리 여성이라는 minority group으로서 겪어야 하는 차별에 심리적으로 분노를 느끼고, 남성들의 안주와 보수성에 대해 그것을 뛰어 넘고자 우리 여성사진가협회가 발족하게 되었다고 본다.


우리가 계획하고있는 10월 전시의 '여성과 자연 '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여성과 자연을 새롭게 받아들이지 않고는 자신을 변화시킨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그렇다면 여성은 무엇이며, 자연과 어떠한 관계에 있고, 황폐해가는 지구와 우리의 삶을 어떻게구원할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근대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야만의 얼굴과, 여성, 자연으로의 회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본론> 페미니즘의 등장배경에서 근대성이란, 봉건성에 반기를 들고 인간 의식의 합리성 중시와 진보세력을 통해 널리 근대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먼저 우리나라의 근대는 봉건제도가 무너지게 된 동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기점으로 그 이후가 근대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근대를 수용할 만한 역사적 뒷받침이 없이 일본의 제국주의가 시작되었고 이것에서 벗어나려는 것에 메어 진정한 근대를 이루기 어려웠다. 해방후에도 일제에 아부했던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기에 진정한 의미의 근대를 이루어낼 수 없었다. 서구에서의 근대는 18C부터 시작되었다. 즉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민중을 지배하는 것으로부터의 해체, 즉 봉건제도가 허물어진 시점으로 부터 근대가 시작되었다. 시민계급들이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낙원을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한 희랍철학들이 대두되었고 이것들이 Modern Project의 근간을 이룬다. 계몽주의는 미자각상태(未自覺狀態)에 있는 인간에게 이성(理性)을 깨닿게 해주고, 편견에서 빠져나오게 함으로서 사상으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깨어있지 못한 인간들이 인간적으로 사는 것이 어떤것인가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이성중심적이고 합리주의적인 합리성을 다양한 개념으로 체계화한 것이 모더니즘이었다. 물론 모더니즘이 기여한 바가 적지 않지만, 이에 못지 않게 많은 부정적인 것을 초래하였다. 모더니즘은 이성을 남성으로 보고, 이에 대체되는 것을 자연으로 보았지만 자연과 등가적 개념으로 여성을 보았다. 문명화 한다는 것은 이성중심적이며, 합리적인 것으로 간주하였고, 자연은 미개발의 상태로 개발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이런 시각은 백인중심적이자 백인중심 시각으로서, 백인 이외의 것은 개발대상이자, 지배의 대상이며, 퇴치되어야 할 문맹으로 보기 때문에 자신들외에는 계몽되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함으로써 이것은 제국주의의 근간을 이루게된다. 이러한 Modern Project를 주도한 것은 유럽과 미국이어 20C에 일본이 가세한다. 이들은 미개발 지역을 강점하기 위해 탐험대를 보내 현지의 실상을 기록하고 정보를 수집하는데 거기에 이용된 것이 사진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사진은 Modern Project의 핵심도구였다고 볼 수 있다. 19C 정치, 경제, 사회는 Modern Project를 강력히 실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20C초반에 문학과 예술은 Modern Project에 대한 다양한 회의적 시각을 드러내면서 다다이즘 - 과거의 모든 예술형식과 가치를 부정하고 비합리성 ?반도덕적 내지는 비심미적(非審美的)인 것을 찬미하는것과 무정부주의 적인 사조로 나타나기도 한다. 모더니티를 위해 산업주의, 자본주의와, 민족국가를 지향하면서 모더니즘이란 개념을 전 지구화하려는 시도가 우리에게는 일본침략의 형태로 드러났다. 민주주의 하에서는 Home Sweet Home이라는 그럴 듯하게 포장된 형태로 나타나 노동을 착취하고 인간들로 하여금 여유와 시간을 빼앗긴 채 쫒기는 삶을 살게 하였다. 개발의 대상은 자연이며, 대량생산과 대량소비하에서 인간은 마치 가장 편리하고 가장 합리적이며 가장 풍요로운 삶을 사는 듯한 착각을 주지만 그것은 진정한 삶을 모더니티에 빼앗긴채 경쟁적이고 피폐한 삶속에 놓여지게 되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제도하에서 국가의 이익을 위해 산아제한이라는 명목하에서 여성의 성을 억압하고 그것을 제도화함으로써 여성이 대상화 되었으며, 주체적인 삶의 주인이 아니라 타자로서의 삶속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자본주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나누어야 한다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도 역시 Modern Project이 인간의 진정한 삶이라는 면에서는 실패한 것이 되었다. Modern Project에 대한 자성과 회의가 일면서 Post-Modernism이 등장하게 되고, 모더니즘을 구축했던 많은 개념들이 해체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사물과 언어, 존재와 표상(表象), 중심과 주변 등 모든 것을 해체하고 새롭게 고쳐 구축하려는 해체주의적 개념이 대두되었다. 해체주의적 관점은 모더니즘의 역사 뿐만 아니라 모든 역사를 다 해체시켜야한다는 것에 근거하였으며, 여기에서 페미니즘이 대두되었다. 그 이전의 여성해방은 단순한 '해방'에 중점을 두었었으나, 해체주의가 Post-Modernism에서부터 나오면서 여성주의인 페미니즘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여성은 구조, 사회, 제도에서 억압된 타자로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가 지배의 역사임을 비추어 볼 때 여성 역시 지배당하고 억압된 삶을 살아왔다. 여성과 자연은 억압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언제부터 차별이 되어 왔는지, 역사의 제도, 구조 등이 어떻게 여성을 억압해왔는지를 역으로 연구하는 것이 역사연구와 다른 페미니즘적 시각이라 할 수 있다.


봉건구조를 타파하면서 다시 또 다른 형태로 전이되는데, 그것은 정치는 민주로, 경제는 자본으로, 사회의 계급은 블루 칼라와 화이트 칼라로, 문화는 세속화로의 변화이다. 그리고 대중들은 이제 계몽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돈을 버는 수단내지 대상으로 변화해 언뜻 보기에는, 외부적인 것을 조화시키면서 발전되는 것처럼 보여지거나, 합리적이며 공평한 것처럼 보여지나, 그 이면에는 주체와 타자라는 것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결국은 조화와 통합이 아닌 또 다른 분화이자 차별의 변종이라 할 수 있다. 모더니티는 이러한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차별을 오히려 더 심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생산과 소비, 정보를 유출시킴으로써 그로 인한 통제의 필요성 때문에 그것을 감시하고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법과 제도, 감시체제 등을 강화시켜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보이지 않는 감시체제로 끌고 갔다. 자칫하면 더 자유스로워진 듯 보이나 더 구속적이고 감시적인 생활하에 놓이기 되었고, 발전되고 개발된 삶속에 있는듯 보이나 성장만능의 이데올로기하에서 자연과는 멀어진 삶속에 놓이게 되어버렸다. 이러한Post-Modernism이라는 거대한 담론속에억압되어진 삶의 양태는 '속도'로 나타나게 되고 그것은 문화나 전통등을 저급한 것으로 억압하고 격하시켰으며, 속도에 밀린 저급성은 결국 천박한 날조된 자본주의로 나타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각종 대형사고는 '속도'에만 치중한 졸속과 천박한 모더니티의 부정적 측면의 결과라 볼 수 있다.


<결론> 여성성(여성주의적 시각)은 인류구원의 도구로 이제는 이러한 남성중심적 사고체계가 만들어낸 부정적인 다양한 행태들을 저지하거나, 대체하거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여성적 마인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이 의의를 가지며, 더불어 지구상의 많은 환경적 문제를 아울러 해결하기 위한 생태적 관점에서 에코페미니즘이 필요한 것이다. 지나친 속도와 빠름에 대해 여유와 느림으로, 투쟁에 대해 여타의 수용으로, 상대에 대한 평가보다는 배려와 포용과 같은 모성적이고 여성적인 속성으로만 우리의 지구를 살리고, 황폐화한 삶을 살릴수가 있으며,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에 여신을 창조해야한다. 여신은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생명의 힘, 푸르게 하는 힘, 살리는 힘의 근원이며 우리의 마지막 보루인 여신의 개념으로 지구를 책임져야 한다. 이제 사진은, Modern Project의 핵심도구였던 사진이 자연과 인간을 구원하는 도구가 되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이라는 컨셉을 실현하고 구현하는 최상의 매체가 되어야 한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여유롭고, 너그럽고 아름다운 여성적인 것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주의적 시각이 필요한 것이며, 그러한 여성주의적 시각에서의 사진작업이 이시대가 필요로 하는 절실한 요구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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